2023. 2. 7. 22:00ㆍㅣ 기록하기
출처 : 기록하는 기억ㅣ하히 라의 한중록
다른 사람의 결혼식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의 결혼식에 가면 울고 왔다. 스물몇 해 어린 시절의 친구가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집으로 보내오고 결혼식장의 위치를 자랑해 낼 때 나는 이제 막 대학교에서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였기에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 식의 의미 그리고 그 중차대함을 느끼지 못하고 내게 다가오기엔 이른 일로 치부하긴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 식장에 선 그날의 주인공인 한 여자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참석한 그곳에서 그리고 돌아와서도 마음이 참 싱숭생숭했었다. 내 기억으로는 식을 보고 돌아와서 일기를 썼고 왜인지 펑펑 울었다. 식장에서는 울렁거림이 있었지만 울어버리고 싶진 않았었다. 내가 그날 일기까지 쓰게 된 이유는 결혼식이라는 것으로 인해 여자의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것이 어쩌면 내 인맥으로 맺어진 지인의 처음 결혼식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가 결혼하던 28살에는 함께 참석했던 친구의 눈물에 따라 옆좌석에서 조금 울기 시작했고 서른 즈음 내가 소개했던 남녀가 나름의 긴 시간의 연애의 만남과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결혼을 하겠노라 초대했던 그 결혼식장에서는 속이 얽히도록 감정을 품어내며 울어냈었다. 엄마의 친구나 아빠의 지인의 결혼식이 아닌 내가 아는 이의 결혼식에 훨씬 많이 가게 되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내게서 그 결혼이라는 식의 의미는 달라져있었고, 결혼식 자체가 흥미롭기로 했었다. 무조건 잠자코 자리를 지키며 몸을 꼬아가며 참아내던 지겨운 결혼식이 아닌 내가 아는 이의 결혼식은 참 예쁘고 재밌지만 눈물이 났다.
그런 결혼식들을 여러 차례 다니다 이젠 내가 형님이 된다고 남편의 동생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시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아마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기록을 남겨도 그 생각은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남기진 못할 것 같다. 조촐하게 치르겠다는 둘의 뜻에 따라 작은 예식홀이었지만 어여쁜 꽃들이 있었고 그 둘의 이야기가 펼쳐진 곳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러는 편이 더 좋다고 맞장구를 쳤었다. 어쨌든 나는 그 결혼식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고 그날 울던 우리 아빠의 눈물과 코막힘의 소리를 들으며 어쩐지 복잡함을 느꼈던 거 같다.
아마 나도 어쩌면 아빠처럼 울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동생의 결혼식에는 울지 않았다. 울어낼 만큼 감정의 깊이가 없었다기보다 나는 내 시댁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시선으로 식을 보았기 때문에 울지 않았다. 그리고 눈물 콧물을 짜내는 아빠에게 “ 아빠가 왜 울어 ”라며 테이블에 있던 냅킨을 건네며 전혀 울 상황이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굴어댔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마음이 들어 저리도 깊이 울고 계신지 말이다. 시동생은 장애인이다. 청각장애인이라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남편에 따르면 어떤 소리의 음은 들리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의 파장인진 알 수 없다고 했다. 처음 남편의 동생을 만났을 때 나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그의 가족에겐 일상인 것을 나만 혼자 호들갑 떨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청각장애인과 맞닿아 서로를 소개하게 된 일은 없어왔기에 그날 처음 듣게 된 시동생의 목소리에 나는 퍽 가슴을 치이며 눈물이 팽 돌아버렸다. 그동안 말을 못 하는 걸로만 알고 있던 청각장애인이 내 앞에서 소리를 내었다. 이응의 발음으로 반복된 그 소리는 왜인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알 수 없고 의미 없는 응 앙 엉 같은 소리는 내는 목의 울림이 가엽게도 느껴졌고 애처롭게도 나를 때리는 것만 같아 나는 고이는 눈물을 애써 돌려내고 천연덕스럽게 웃어댔다. 그 목청이 나를 반기는 것 같아 더 울컥했다. 어머님은 처음부터 자신의 둘째 아들이 아픈 손가락이라 그 소개가 참으로 힘드셨는지 자꾸 내게 우리 모두 비장애인일 뿐이라며 장애가 없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리를 어쩌면 장애인보다 더 아래로 칭하는 듯한 ‘비장애인’이라는 말로 낮춰내며 몇 번이고 반복해댔다.
남편이기 이전에 남자 친구였던 그는 번번이 내게 동생 이야기를 했었다. 그 연애시절에 내게 보였던 행동이나 말 꺼냄이 모든 걸 알고 생각해보니 참 어려웠고 조심스러웠던 행동들이었나 보다. 당시 남자 친구는 카톡으로 연락을 취하는 동생의 메시지를 받으면 곧장 답장을 해댔고 동생한테 연락이 온 이야기를 줄곧 꺼내왔었다.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무슨 일이 있는거냐며 급한 거면 연락을 하라고만 대답했었는데 남자 친구는 아니 톡이 와서... 라는 말만 몇 차례 하며 내 눈치를 살펴왔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동생과는 통화를 하며 연락할 수 없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던 것 같다. 언제고 내게 이것에 대해 말을 해야 하는데 그게 언제가 적당할지 그때를 몰라 동생에게 카톡이 온 김에 한번 넌지시 말해볼까, 아님 어째 볼까, 혼자 그렇게 고민이 있었나 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연락이라도 올 때면_ 아니, 동생 이야기가 나올 때면 주머니에서 폰을 만지작 거리며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 참 생생하고 당시 눈치를 보던 지금의 내 남편이 안타깝다. 자신이 가진 결핍도 아니건만, 그리고 너와 내가 만나는 데에 어떠한 장애물도 아니건만 그는 그렇게 눈치를 보았다. 그는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게 자신의 동생이라는 그것 하나만으로 왜인지 늘 주늑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의 시작은 하히라의 브런치에서 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 기록하는 기억ㅣ하히 라의 한중록 매거진 (brunch.co.kr)
기록하는 기억ㅣ하히 라의 한중록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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