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ㅣ

2023. 1. 24. 22:00ㅣ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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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록하는 기억ㅣ하히 라의 한중록

 

 

 

할아버지의 별세

 

 

 2021.03.19 금요일 아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평소에는 일이 있어야만 걸려오던 엄마의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정말로 무슨 일이 있어서 엄마가 연락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세상 밝은 목소리로 전화에 응했었다.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갓난쟁이를 데리고 올 필요 없다며_ 황서방이나 혼자 내려와 인사드려도 된다_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니 그냥 너희는 안 와도 되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_ 다시 정정하여 말씀하셨다. 그래도 나 또한 조문드리겠노라 그러고 싶노라 내가 다시 의사를 밝혔을 때 엄마 아빠는 아기를 데리고 힘들게 어떻게 오려하냐고 근심과 걱정을 담은 목소리를 전하며 잘 상의해 보고 연락하라며_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아침 낮잠으로 첫 번째 잠을 자고 있던 아기가 엄마의 전화를 마치자마자 칭얼대며 깨어났다. 할아버지가 조만간 돌아가실 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슬픔이란 감정은 어쨌든 내게 다가왔다. 아기침대에서 해맑게 웃는 아기를 보며 흘러내린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우리 아가는 할아버지 얼굴도 못 봤네 - " 라며  후회했다.  아니 보셨더라도 내가 낳은 아기라는 걸 알려드려도 아마 또 잊어버리시고 기억 못 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한 번은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말년에 할아버지는 내게 존댓말을 쓰며 " 무슨 일로 여기 오셨소?  안에 사람이 있으니 들어가 보시오 - " 라며 자신의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렇다. 할아버지는 치매끼를 보이셨고 후에는 좀 심각하리만큼 증상이 악화되어 길을 잃고 다쳐 쓰러진 채로 응급실에 실려가 경찰에서 연락이 온 적도 있었다. 그때 그 응급대원이 어찌하여 내 번호를 알고 제일 먼저 취한 연락의 상대가 나였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할아버지의 아들인 나의 아빠도 아닌 그리고 엄마도 아닌 장손인 오빠도 아닌, 할아버지가 계셨던 문경에서 살고 있지도 않은 나에게 말이다.

 

그때  그렇게 나에게 처음으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어쩌면 할아버지가 나라는 사람을, 자신에게 있는 유일한 손녀를 특별하게 저장해 놓았거나 어쩌면 내가 할아버지 손전화의 단축번호 어디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와 할아버지는 전화를 자주 하는 사이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그때 그날 그 사건 이후 나에게 용서를 바라며 나를 보듬고 아끼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행하지 못했던 사랑을 내게 뿜어 내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고 나를 더 특별히 가까이하고 싶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그날 할아버지는 내게 연신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는 말로 나의 등을 쓰다듬으셨고 그런 일을 왜 여태껏 말하지 않았냐며_  그렇게 나를 원망했었냐며_  내가 너 이름을 지어주었다고_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왜 모르냐며_  네가 태어난 그 해와 달 그리고 그날과 시를 합쳐 너의 이름을 내가 직접 지어줄 만큼 널 소중히 생각했다고_  미안하다고 몰랐노라고_  그렇게 말씀하셨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한 번에 내뱉으셨던 그날의 할아버지를 나도 한 번에 용서했었다. 아니 사실 할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한 적은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남아선호 사상의 피해자로서 그 책임을 물어본 것뿐이었을지 모른다.

 


 

거실을 뱅뱅 돌며 ' 그렇게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고 가셨네- '라는 소리를 몇 번 되내었다.

 

"  엄마만 고생했어. 진짜 정말로.

 내 인생 이렇게 힘들게 하고. 우리 엄마만 고생시키고.  "

 

미우면서도 안타깝고 슬프면서도 그리운 느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 이 글의 시작은 하히라의 브런치에서 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 기록하는 기억ㅣ하히 라의 한중록 매거진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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