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6. 22:00ㆍㅣ 기록하기
출처 : 하히라의 브런치
나의 이모부
나에게는 두 명의 이모부가 있다. 그중 엄마의 동생의 남편이었던 이모부는 날 예뻐하셨다. 얼마나 이뻐했는지 말해보자면 만날 때마다 나를 품에 안아주셨고 만남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딸보다 나를 더 끼고 있으셨다. 사실 난 그런 이모부의 무릎 위에 앉아 그 품에 있는 것이, 그게 좀 뭔가 싫었던 기억이 있다. 아빠가 아닌 남자 어른이 날 그렇게 안아주고 품어주는 게 너무너무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뭔지 모르게 이모부 품에 안겨있어야 할 때면 몸에 힘을 바짝 주고 긴장을 하고 있던 기억이 있다. 이모부는 그런 내 맘을 눈치를 채기는커녕 끝내 알지도 못하셨고 그저 예쁘다- 귀엽다- 잘 있었냐며- 그렇게도 날 품어주셨다. 그러면서 꼭 내손을 만지작 거리셨다. 그리곤 매번 똑같은 말을 나의 엄마에게 하셨다. “얘는 일시킵니까? 왜 손이 이리 몬났어예? 야는 정말 다 이쁜데 손이 이래가 - 에고” 그런 이모부 말에 우리 엄마는 설거지 한 번을 안 시키며 키운다며 - 세상 곱디곱게 금이야 옥이야 부엌에는 절대 들이지 않는다- 는 말을 매번 반복해서 대답하셨었다. 그러면 그 말에 이모부는 어김없이 “백날일만하는 손 맨 쿠로 이걸 어째요” 하면서 나에게 너는 진짜 다 이쁜데 손이 못났다며 이모부만의 사투리를 쓰며 연신 내손 모양을 아쉬워하며 어렸던 내 작은 손을 이모부의 큼직만 한 손으로 감싸고 쪼물딱 쪼물딱 거리며 말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모부 손도 안 이뻤으면서? 치 ,
나는 어릴 때부터 물건을 꼭 쥐어버릇 했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연필을 잡을 때는 있는 힘을 다해 진심으로 꼭 잡고 글씨를 썼었다. 그러다 보니 세 번째 손가락 왼쪽 부분은 굳은살이 박였고 점점 비틀어지기도 하였다. 살짝 잡고만 써도 잘 써진다는 엄마의 말에도 나는 왜인지 그렇게 연필을 꼭 쥐고 잡아내어 글씨를 썼었다. 한글을 가리키며 네모난 공책에 글자 연습을 할 때부터 연필을 그렇게 꼭 쥐지 않고 살살 쥐어도 글씨가 써진다고 백만번은 말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는 힘을 주어야만 = 글씨를 쓴다고 느꼈고 힘을 주어 글씨를 빼곡히 써야만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모자라 샤프를 쓰게 됐을 때부터는 B심이 아니면 답답하다고 까지 느꼈다. 나는 그렇게 힘주어 빡빡하게 글씨를 썼고, 쓰고 난 글씨 색은 진해야 속이 후련하였다. 그리하여 한바탕 노트를 하고 나명 손부터 팔 전체가 뻐근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글씨뿐 아니라 뭐든 꼭 잡고 힘주며 하던 모든 것들이 내손을 가냘프고 고운손에서 멀어지게 한건 아닐까 싶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만날 때마다 품에 안으려 하시고, 매번 손이 못생겼다고 하시는 그 레퍼토리가 나는 좀 지겨웠다. 그리고 내손이 뭐 어때서? 손이 이쁘면 뭐 좋나? 라는 생각을 이모부와 엄마의 똑같은 대화를 반복할 때마다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모부가 한창 날 예뻐라 귀여워라 해주시던 때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기에 나는 아름다움이나 예쁨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었기에 내 손가락이 못난 것에 대해, 그리고 길쭉길쭉 예쁘지 않은 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때였다.
아무튼 막내 이모부는 그렇게 굳은살이 있는 내 손가락을 만지작만지작 거리셨다.
※ 이 글의 시작은 하히라의 브런치에서 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하히 라의 브런치
자본주의가 아티스트 | 하히 라의 글쓰기 공간_ 홍대 나름미대 출신_ 미술과 문학 예술장르에 조예가 깊다고 말하고 싶으며, 하고싶은것도, 되고싶은것도 많기만 한 작가ㅣ그리고 TMI 기록자ㅣ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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