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남동생 ㅣ 분

2022. 12. 20. 22:00ㅣ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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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하히라의 브런치

 

 

 

할머니의 남동생 그러니까 아빠의 외삼촌

 

 근데 아무리 봐도 너무 젊었다. 할머니 동생이라면 할머니랑 비슷한 연령대여야 하는 거 아닌가? 아빠와 비슷한 연령대 같기도 하고_ 아니, 그분의 자식이라고 같이 오는 남자아이는 나보다 어린 걸 보니 아빠보다 더 나이를 잡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외삼촌은 술을 잡수시고 늘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우리 누나가 나 어릴 때 집에서 먹을 게 없어서 굶다가 누나 보고 싶어서 40분 넘게 걸어서 여기 오면 같이 놀아주었고 저녁노을이 나올라치면 꼭 주머니에서 오백 원을 꺼내 주며 매형 올 시간이니 어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러면서 꼭 누나가 매번 뭐 사 먹으라고 주던 그 오백 원이 그때 얼마나 큰돈인지 아냐며_ 그때 오백 원이면 지금 얼마다 -! 라며 큰소리를 내신다.

 

자신이 그렇게 누나를 좋아했고 누나가 시집가니 너무 보고 싶어 그렇게나 눈물이 났더라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오백 원을 자신에게 척척 내주던 누나가, 그 큰돈이 매번 주머니에서 나오는 누나가, 정말 시집을 잘 갔구나 싶었다며 나의 할아버지에게 “매형이 돈을 좀 잘 벌었나 봐요?”라고 꼭 물어대는 레퍼토리가 있었다. 그러면 나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할머니가 돈을 준 줄도 몰랐다며_ 난 모르는 일이라고 답하셨다. 어린 나이에 언제나 함께 있던 누나가 집에 가면 이제는 없다는 사실이 어렸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섭섭하고 무서운 일이었다며_ 놀 거 없고 마음 둘 곳 없던 자신에게는 누나가 최고였다는 그분에게서 매번 듣는 그 말에 나는 우리 할머니의 그 작지만 시원한 웃음소리가 생각났다.

 

나는 아빠의 외삼촌이 다녀가신 다음날 엄마에게 물었다. 근데 할머니 동생이 왜 이렇게 젊냐며 그 이유를 말이다. 나의 아빠와 삼촌의 경우도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건 삼촌이 막둥이인 이유도 있지만 중간형제로 고모들이 있고 사실은 삼촌 위에 한 명의 삼촌이 더 있었는데 어릴 적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아빠의 오 남매의 막내인 삼촌처럼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너무 심하게 나는 거 아니냐며-  왜 이리 젊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엄마는 네 할머니의 아빠가 또 장가들어 낳은 자식이라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거라며_ 배다른 자식임에도 저렇게 사이가 좋은 게 신기한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전 엄마들 자식 중에 유일하게 외삼촌에게 곁을 내주었던 거 같다며 그렇게 하기도, 그렇게 한다고 한들 둘이 서로 살가운 게 참 힘들 텐데 저런 거 보면 진짜 할머니가 정이라는 것을 대단히 준거 같다고 말했다. 

 

 

그 옛날에는 첩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런 엄청난 것들의 영향이 내 주변에 버젓이 있었다니 !!

 

첩을 둘 정도로 나의 할머니의 아빠가 부자였던 것은 아니었던 거 같고 꼭 부자여야만 첩을 두던 시절도 아니였으니,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당시의 할머니의 아빠의 사정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예전에 아빠에게 "자기네 집안은 참 별게 다 있다"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 말을 듣던 나는 분명 어렸었지만 아빠 쪽 친척 중에 옛날에 이혼이란 걸 한 사람도 있다고 엄마가 적잖이 신기하게 여기며 쳐다보던 그 표정이 기억나고 나 또한 내가 어렸던 당시에도 흔하지 흔한 이혼이 아니었기에 나이 많은 그 사람이 이혼을 했다는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어르신이 그 예전에 이혼을 했었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그거 말고도 뭐 많아 - 네 아빠 집안은 별개 다 있더라" 라며 어린 나에게 뭔가를 숨겼던 그 대화가 불현듯 생각이 났었다. 어쩌면 그때 엄마는 자신의 시어머니인 나의 할머니의 아빠 이야기를 차마 어린 딸에게 하지 못했던 거 같다. 흉보는 거 같은 그 이야기를 굳이 꺼낼 필요도 없었고 그걸 알려줬다가 어린 내가 친한 할머니에게 입방정을 떨면 며느리인 엄마의 입장이 오죽 난감할 테니 말이다.

 

 

1943년에야 첩이라는 것이 이혼원인이 된다고 판시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법상으로는 남자의 간통행위는 어쨌든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8.15 광복 후에야 첩이 법으로 금지되었으니 알고 보면 아빠의 외삼촌은 첩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나의 할머니의 엄마가 돌아가셨다거나 이혼을 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고 “또 장가 들어서”라는 엄마의 대답에서 그 “또”라는 단어가 왠지 그렇게 추측하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그런 친동생 아닌 동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꽤나 껄끄러웠을 터인데 할머니는 어리고 어린 그 동생을 품어주었나 보다.

 

할머니의 아빠가 그랬다니, 그 시절에 그러니까 할머니의 엄마는 어찌 됐을까, 그리고 할머니의 아빠라는 사람은 한번 더 장가를 가면서 그 먼저 낳은 자식들에게는 어찌 설명하고 대했을까? 그래서 그렇게 나이 들어 또 결혼해놓고 자식까지 낳아버리고_ 그 당시 그런 일이 있다는 게 나는 놀라웠고 어쩌면 할머니에게는 치부일 수 있는 그 사실을 듣게 되어 나는 할머니도 참 고생이 많았겠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니 배다른 남동생을 할머니가 이뻐하고 챙겨주었던 것도, 아빠의 외삼촌이라는 그분이 우리 할머니에게 의지했던 사실도 참으로 다르게 다가왔다.

 

어린 나이에 태어났더니 이미 다 큰 언니 오빠들 틈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보듬어주었던 누나가 바로 할머니였고, 어쩌면 그 집에서 자라면서 눈초리를 받았을 테고_ 아빠라는 사람은 나이도 많았을 테고 무서웠을지 모르고_ 엄마는 일을 나갔고_ 그렇게 텅 빈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던 아빠의 외삼촌이 시집간 자신의 배 다른 누나를 어린 나이에 사십 분을 참고 참아 걸어가며 찾아올 만큼 그 둘 사이에 이야기는 더 많고 서글플 테지.

 

그러고 나니 아빠의 외삼촌이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밤 누나 생각하며 걷고 싶다던 그 말과 눈동자의 촉촉함이 나의 마음을 퍽이나 참으로도 아리게 만들었다.

 

 

그다음 해에도 아빠의 외삼촌은 한옥집에 방문하여 할아버지의 안부를 여쭈었고 아빠 엄마의 집에서 명절 인사 겸 술을 자셨다. 나는 그 외삼촌 식구라는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졌고 이내 촌수 정리를 해야 한다며 아빠의 외삼촌은 자신의 아들이 나에게 삼촌인 거라며 자신이 나이 먹고 느즈막에 자식을 낳는 바람에_ 내 아빠보다도 늦게 아빠가 되는 바람에_ (아빠와의 나이 차이는 굳이 꺼내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이 나이는 어리지만 내가 모셔야 하는 윗사람임을 알려주었다. 나는 술도 같이 한잔 한김에 살갑게 아빠의 외삼촌 아들에게 "그러면 삼촌이 용돈도 주고 좀 그랬으면 좋겠다-" 는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었다.

 

 

 

한세대 그 다름 세대의 격을 따지고 촌수 따지는 일은 이미 할아버지를 통해 평생을 익혀왔고 나의 삼촌은 막둥이인 덕에 큰집의 오빠 언니와 같이 학교를 다니며 나이도 같아 친구로 지냈지만 집안에서는 윗세대로 모시고 공경받아왔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큰집의 오빠가 낳은 자식이 삼촌이 낳은 자식보다 세대가 낮기 때문에 나이는 많아도 7살밖에 안 먹은 삼촌의 아들에게 존댓말을 쓰라고 강요받았던 일도 새삼스러울 것 없을 족보를 따지는 행위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주입식 교육에 비하면 술자리에서 웃으며 어린 삼촌에게 “삼촌”이라 높이 부르는 일이 대수 일리 없고 존댓말 하며 용돈 달라하는 농담쯤은 나의 기막힌 순발력일 뿐이다.

 

 

 

 

 

 

 

 

 

 


※ 이 글의 시작은 하히라의 브런치에서 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 하히 라의 브런치 (brunch.co.kr)

 

 

하히 라의 브런치

자본주의가 아티스트 | 하히 라의 글쓰기 공간_ 홍대 나름미대 출신_ 미술과 문학 예술장르에 조예가 깊다고 말하고 싶으며, 하고싶은것도, 되고싶은것도 많기만 한 작가ㅣ그리고 TMI 기록자ㅣ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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