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ㅣ 내 할아버지는 공무원

2023. 1. 30. 22:00ㅣ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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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록하는 기억ㅣ하히 라의 한중록

 

 

 

공무원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방에는 작은 좌식 책상이 있었다. 예의가 다 정립되지 않았고 장난을 좋아하던 그 어렸던 시절에도 나는 할아버지의 그 책상만은 건들지 않았다. 아니 건드릴 수 없었다. 그건 할아버지의 것이었고 할아버지는 무서운 분이셨으며 내겐 너무나 어려운 분이셨기 때문에 차마 건드릴 수도 없었고 살짝 훔쳐보기도 여간 어려웠다. 지나가며 힐끔힐끔 쳐다보던 그 작은 책상에는 늘 주판이 놓여있었고 수첩과 옥편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한자를 가장 많이 아는 분이셨다.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던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살아남아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공부는 한자였다고 한다. 장남으로 태어나지도 않았기에 돈을 내야 갈 수 있던 중학교는 쳐다보지도 못했던 할아버지는 한자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획 한 획 익히고 외운 한자는 할아버지를 공무원으로 만들어 주었다. 문경에서 가장 높은 사람도 종이를 들고 찾아와 이 한자가 무엇이고 그 뜻이 어찌 되며 어찌 해석해야 하는 문장이냐며 그렇게 할아버지를 찾았다고 하였다. 그런 할아버지는 자신이 올라갈 수 있는 위치까지 직급을 올려 승진하셨고 그리하여 고모들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며 네가 누구 딸이냐면서 할아버지 이름을 언급하며 니 아버지 뭐하시는 분인지에 대해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그토록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매일 일기를 쓰셨다. 할아버지의 책상을 훔쳐보지도 못했던 나는 그 사실을 알리 없었지만 엄마가 알려준 사실이다. 너희 할아버지는 정말 대단하시다. 정말 바르고 흐트러짐이 없으신 분이라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 이유의 첫번째가 바로 일기였다. 그러면서 너희 할아버지 일기장은 읽고 싶어도 제대로 다 읽을 수가 없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할아버지는 일기를 한문으로 쓰셨다. 그내용은 대충 오늘의 날짜와 날씨 그리고 무엇을 하였는지를 간략하게 쓰셨다고 한다. 엄마가 훔쳐보고 간략히 추론할 수 있었던 할아버지의 일기속에는 추석이라 아들내외와 자식들이 왔고 오후에는 칼국수를 먹었으며 장을 보고 온천을 다녀왔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에게 어떤일이 있었는지를 적으셨다고 한다. 이 사실은 나를 일기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일기란것이 숙제라고 여겼던 나에게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할아버지에게 숙제를 내는 선생님도 없는데 스스로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심히 충격적이었고 늘 꼿꼿하게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는 할아버지가 행하시는 그 기록의 사실을 알게된 뒤 나또한 스스로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다 주었다. 후에 할아버지가 무섭지 않아지고 할아버지의 책상을 보는것이 두렵지 않아졌을 몇해 전에 나는 할아버지의 일기를 본적이 있다. 그때까지도 내 할아버지는 기록을 멈추지 않으셨더라. 정말 엄마말대로 오늘 무슨일이 있었는지 간략히 적은 그 일기는 점점 하루하루 빼먹는 날이 종종 있어왔다. 그리고 치매가 오신뒤에는 거의 쓰실 수 없었던것 같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끝까지 기록과 배움을 끊지 않으셨다. 여권에는 영어로 1월부터 12월까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적고 외운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높지도 않은 그 작은 책상위에는 늘 옥편이 펼쳐져있었으며 그때까지도 필요하면 주판으로 셈을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는 치매가 왔지만 신사 다움은 잊지 않으셨다. 살면서 집 밖으로 나갈 때는 기필코 셔츠만을 입으셨던 할아버지는 기억은 아무리 가물가물해질언정 단추가 달린 셔츠에 마이를 걸쳐 입고 마지막으로 중절모는 꼭 쓰고 나가셨다. 편한 티셔츠 한 장 걸치면 그만인 것을 정신도 온전치 못하신 분이 꼭 셔츠를 입고 단추를 잠가 겉옷까지 챙겨야 집밖을 나가셨다. 엄마는 그걸 또 그렇게 빨아주시고 다려주셨다. 평생 곱게 단정하게 지내시던 분이 갑자기 어찌 바뀌겠냐며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할아버지의 리즈시절은 문경에서는 가장 잘 나가던_ 문경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지나만 가도 쳐다보던, 어쩌면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않았던 자신이 올라갈 수 있었던 최고의 고위공무원이었을지도 모르는 그때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덕에 아빠와 엄마의 주례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면의 장님 그러니까 '면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봐주셨다고 한다. 그것도 부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먼저 해주겠노라- 해주고 싶노라- 하셔서 맡게 된 것이라고 들었다.

 

 

내가 결혼할 때는 문경시장님이 오셨다. 결혼식장은 아니고 문경에서 하는 피로연에 말이다. 문경시장님은 아빠의 친구였다. 아빠는 그 누구보다 인맥이 화려한데 그중에서도 동기동창모임을 가장 아끼는 편이시다. 단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하니 동창 친구로서 축하해주러 온 문경시장님 덕에 내 피로연은 조금 품위가 있어졌다고 말할수 있다. 그런 와중에 치매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던 할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정신을 버쩍 드시고 아빠에게 말하셨다.

 

 

 


네 친구는 시장씩이나 하는데 너는 뭐하냐?

 

 

 

 

 

할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그런 것이 바로 할아버지 다운것이었다. 그래 그랬지, 우리 할아버지 독하시고 무서우셨지. 아빠는 그 말이 참 아팠나 보다. 옆에서 지켜보던 막내 고모는 참 모질다 싶어 불만은 토하면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그런 아빠에게  "나도 스물몇 살 때 김연아처럼 금메달 못 땄고, 할아버지도 링컨 나이 때 대통령도 못됐으면서 !  아빠한테 왜 그러신대?  그런 말 할 자격은 링컨 같은 사람이나 하는 거야!! " 라며 내 아빠의 쓰라린 마음을 달래주었다. 아빠는 딸을 참 잘 키웠다. 그러니까 아빠는 나를 참 잘 키우신 거 같다. 이렇게 세상을 완벽하게 찔러대며 바라보고 사고하는 인지력 좋은 사람으로 키운 건 아빠이다. 그런 아빠를 그토록 좋은 날에도 상처 주신 분이 바로 내 할아버지시다. 그래 맞다. 할아버지는 문경에서 제일 잘 나가는 공무원이었으니_ 그러니 저러시겠지.

 

하필이면  그때는 또 어떻게 정신이 번쩍 들어오셨데 ?

 

 

 

 

 

 

 

 

 

 


※ 이 글의 시작은 하히라의 브런치에서 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 기록하는 기억ㅣ하히 라의 한중록 매거진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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